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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한구석이 늘 뒷물질을 덜 끝낸 듯 눅눅하고 불편했다. 이 정체 모를 감정은 어디서 오는 걸까. 곰곰이 들여다보니, 그것은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망각한 데서 오는 소란이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어느새 엄마라는 존재를 내가 보살펴야 할 연약한 아기처럼 여기고 있었다. 그저 잘 드시고 아프지 않으신 것이 내 생의 가장 큰 안심이라 믿으며 말이다.
나의 간섭은 때로 지나쳤다. 가족 중 누군가 엄마를 충분히 존중하지 않는 듯 보이면 날을 세웠다. 내가 엄마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 그것이 효도인 줄 알았다. 하지만 문득 스스로에게 묻는다. 엄마는 정말 딸의 보호가 필요할까? 아니다. 엄마는 자신을 힘없는 약자로 취급하며 가련하게 바라보는 딸의 시선이 결코 반갑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그저 엄마의 존재 가치를 비춰주는 대등한 친구였다.
나의 이 섣부른 보호자 의식은 둘째 언니가 엄마의 보청기를 해주겠다고 나섰을 때 극에 달했다. 고마움보다는 미안함이 앞섰고, 그 부채감 때문에 언니와 엄마의 안색을 살피며 불필요한 친절을 베풀었다. 왜 나는 엄마를 '나만의 엄마'인 양 독점하려 했을까. 언니 또한 자식으로서 스스로 감사함을 깨닫기 위해 선택한 행동일 뿐인데, 나는 그 지불해야 할 비용의 무게를 지레짐작하며 눈치로 마음을 재단했다.
차라리 돈을 나누어 냈다면 이 무거운 마음이 가벼워졌을까. 남동생까지 불러 세 몫으로 나누었다면 내 안의 계산기가 멈추었을까. 부질없는 생각들을 글로 옮겨 적으며 비로소 깨닫는다. 보청기 값을 치르는 것은 언니도, 나도 아니었다. 그것은 평생을 '모친'이라는 이름으로 헌신해 온 엄마가 당신의 생(生)으로 당당히 지불한 대가였다.
나는 여전히 서툰 셋째 딸이고, 엄마는 오늘도 그 묵직한 모친의 얼굴로 나를 가르치신다. 자식의 보호 뒤에 숨은 약자가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증명해 내는 당당한 주체로서 말이다. 비로소 내 마음의 보청기가 끼워진 듯, 엄마의 진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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